그분의 부르심
내 삶을 정의 내린다면 ‘그분의 부르심’이라고 하고 싶다. 그분은 끊임없이 내게 손짓하셨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머리카락이 희끗해진 오늘까지 그분은 나를 부르고 계신다.
“은혜라고 쓰고, 빚이라 읽어라.”
누가 새겨 넣었는지 모르는 이 문장이 어린 시절 나의 마음판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남부러울 것 없이 풍요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내 마음에 새겨진 ‘은혜’라는 글자를 ‘빚’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분은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명제가 내 가슴과 생애에 운명처럼 다가와 사명의 발걸음이 되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영원한 것이다.”
‘부르심’은 헬라어로 ‘클레시스’(Klesis)라고 하는데, ‘콜링’(Calling)의 ‘ing’처럼 영원한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다. 단 한 번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부르셨고, 지금도 부르고 계시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 다른 이를 돕는 자리로 끊임없이 부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슈바이처를 꿈꾸는 의학도로 불러내셨다. 시간의 십일조와 의료선교를 서원하는 집회로 불러내셨고, 서해안의 오지를 다니며 영혼을 낚아 올리라고 병원선으로 불러내셨다. 한때는 선진 의술을 배울 수 있도록 미국의 존스홉킨스로, 피츠버그와 하버드로 불러내셨다. 그리고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살아내라고 선한목자병원의 자리로 부르셨다. 이 부르심들은 내 영혼에 선교적인 DNA가 되어, 또 다른 부르심들을 갈망케 했다.
선한목자병원을 개원하고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신 대로 우리를 불러내셨다. 아이티, 미크로네시아, 중국, 필리핀, 라오스, 미얀마, 몽골, 네팔,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의 영혼들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는 외침을 듣게 하셨다. 하나님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 우리를 부르실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부르심으로 인해, 지금은 알 수 없는 그 어딘가를 향해 의에 굶주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계속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지고 선교의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전체 3장으로 되어 있다.
1장에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이 부르시는 선교지로 달려간 내용들이다. 하나님께서 선한목자병원과 ‘굳셰퍼드재단’을 어디로 부르셨고, 무엇을 하게 하셨는지를 기록했다. 대지진으로 인한 아이티 참사 현장과 쓰나미 재앙을 보았던 인도네시아, 선교 병원을 세우기 위해 몸부림쳤던 라오스와 미얀마 그리고 가난하고 헐벗었지만 영혼이 아름다운 아프리카 나라들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 그 현장들에 찾아가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보고 느낀 세계를 담아내고자 하였다.
2장에서는 ‘부르심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주님께서 나를 부족하나마 의료선교를 하는 의사로 세우시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의료선교사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서원을 어떻게 받아주셨는지, 그 서원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 나와 우리 가족을 얼마나 끈질기게 연단해 오셨는지를 기록했다.
마지막 3장에서는 인공관절 전문가의 꿈을 펼치며 오늘도 현재 진행형인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이 책에 담긴 나와 내 아내의 스토리는 우리가 찾아낸 길이 아닌 그분이 불러주신 길이다. 그 길을 지금 걷고 있고 앞으로도 가게 될 것이다. 단 하나 확신하는 것은 그분이 부르시는 길에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분이 부르시는 곳에 내 생명이 있었고, 생명을 살리는 열매가 있었으며, 나를 진동시키는 행복이 있었다.
나는 의료선교를 하면서 만난 하나님이 얼마나 친절하고 세밀하신지, 그 섭리와 과정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영혼이 얼마나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부디 이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014년 가을, 재단과 병원 경영의 어려움 속에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 불쑥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전해주셔서 이 책이 나오도록 이끌어주신 여진구 대표님과 최지설 팀장, 그리고 규장의 모든 식구들께 감사드린다. 오늘 있다 내일 없어질 들풀과 같은 나의 인생 이야기를 잘 소개해주어서 이 책이 나오도록 이끌어준 백상현 기자와 이상완 목사님께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늘 내 옆에서 최선을 다해 함께 이 길을 걸어준 사랑하는 아내 김정신 권사와 두 아들 사무엘, 다니엘에게 감사와 애정을 보낸다. 또한 곧 다시 뵙게 될 아버지 고(故) 이종찬 장로님과 오늘 새벽에도 무릎으로 기도하시고 계실 어머니 김용화 장로님,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형제들, 28년 전 사위이자 셋째 아들로 맞아 사랑해주신 김선도 감독님과 박관순 사모님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5. 7
이창우